파평윤씨 문중의 자녀교육을 위한 곳으로 문중의 자녀와 내외척, 처가의 자녀들이 모여 합숙교육을 받았다.
초등반용 종학당과 고등반용 정수루, 기숙사가 있다.
파평 윤씨 문중의 자녀와 내외척, 처가의 자녀들이 모여 합숙교육을 받던 교육도장이다. 인조 21년(1643) 윤순거가 문중의 자녀교육을 위해 세운 후 종약(宗約)을 제정하였다. 화재로 인해 없어졌다가 1970년 윤정규가 지금의 종학당을 다시 지었다.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가운데 1칸은 대청을 겸한 트인 마루를 두었고 양쪽 칸은 방을 설치하였다. 1910년까지 운영된 종학당은 일반 서원이나 서당과는 다르게 교육목표와 교육과정을 두고 학칙도 정하여 시행하였다. 종학당은 조선 인조 21년(1643) 윤순거가 문중의 자녀교육을 위해 건립하고 종약(宗約)을 제정하여 종중의 자녀와 문중의 내외척, 처가의 자녀들이 모여 합숙교육을 받던 교육도장(敎育道場)이었다.
그러나 화재로 인하여 학사건물이 소실되었다가 1970년에 이르러 동토 선생의 5대손인 정규(果川公)가 현재의 종학당을 다시 재건축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써 중앙 1칸은 대청을 겸한 통간(通間)마루를 설치하였고, 양쪽 1칸은 방을 설치한 한옥 8작(八作)건물이다.
이 종학당에서는 일반서원(書院)이나 서당과는 다르게 교육목표를 정하고 교육과정을 두고, 학칙도 정하여 시행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전까지 운영되다가 합방이후 신교육제도의 도입으로 폐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