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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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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함께하는 문화유산답사I

5월 논산여행 인물과 함께하는 문화유산답사

금강의 비경을 안고 있는 임이정과 팔괘정, 사제의 정을 나누다

강경은 상인과 자본이 넘쳐나는 물류와 경제의 거점으로 조선말 평양장, 대구장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시장 중의 하나였다. 또한 강경은 원산과 함께 조선의 2대포구로 그 이전부터 명성을 떨쳤으니 조선시대 물류와 경제의 거점으로 한 나라의 상권을 쥐락펴락했던 약속의 땅이었다. 이처럼 강경이 조선시대의 논산 역사를 화려하게 써 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금강이 논산의 땅을 적시고 흐름으로써 가능했다.

전북 장수에서 발원하여 충청도의 곳곳을 에두르고 휘돌아 논산에 이르러 더욱 물길을 키우며 서해바다로 흘러가는 금강. 이 강은 세월을 더해가면서 경제뿐만 아니라 지역민의 정서는 물론 문화에도 영향을 미치며 논산지역의 정체성을 끌어안는다. ‘논산’하면 유교문화를 빼놓을 수 없고, 유교 하면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 ~ 1689)을 빼놓을 수 없다. 또 사계와 우암하면 임이정(臨履亭)과 팔괘정(臨履亭)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두 정자 모두 도도히 흐르는 금강이 바라다 보이는 금강 가 황산의 언덕바지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음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금강이 논산의 조선경제사를 화려하게 써내려 간 것과 같이 조선 유교사를 화려하게 써내려 간 두 인물의 유장한 이야기가 서린 임이정과 팔괘정. 스승 사계가 황산마루 남쪽에 임이정을 짓고 강학을 시작하자 스승의 곁에 있고 싶은 제자의 마음으로 우암은 가까운 곳에 강학공간을 지었다. 임이정이 잘 바라다 보이는 황산마루 북쪽의 팔괘정이 그것. 150m의 공간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정자 어디에 가더라도 앞마당에 서면 서해를 향해 도도히 흘러가는 금강의 비경과 마주할 수 있다. 두 정자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학문적으로 바라보는 바가 같은 두 인물, 사제지간의 정 또한 어느 곳을 가더라도 느낄 수 있다.

  • 강경의 현대모습. 한 때 우리나라의 중심상권을 쥐락펴락했던 강경은 속절없이 쇠락에 쇠락을 더해 지금은 옛 영화를 간직한 역사의 뒤안길만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세월이, 시대가, 이 고장을 스쳐가 상채기 처럼 남겨둔 근대건축물이 곳곳에 남아있다.

    강경의 현대모습. 한 때 우리나라의 중심상권을 쥐락펴락했던 강경은 속절없이 쇠락에 쇠락을 더해 지금은 옛 영화를 간직한 역사의 뒤안길만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세월이, 시대가, 이 고장을 스쳐가 상채기 처럼 남겨둔 근대건축물이 곳곳에 남아있다.

  • 강경포구를 내려다보는 전설의 언덕 옥녀봉 전망. 금강이 강경포구로 흘러들어와 포구를 적시며 서해로 흘러가는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옥녀봉의 또 다른 이름은 강경산. 본래의 산 이름 강경산이라 하지 않고 이 고장사람들조차 옥녀봉이라 하는 것은 이 산에 선녀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강경포구를 내려다보는 전설의 언덕 옥녀봉 전망. 금강이 강경포구로 흘러들어와 포구를 적시며 서해로 흘러가는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옥녀봉의 또 다른 이름은 강경산. 본래의 산 이름 강경산이라 하지 않고 이 고장사람들조차 옥녀봉이라 하는 것은 이 산에 선녀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 임이정에서 바라 본 팔괘정. 오른쪽 위 하얀 전망탑 아래 보이는 것이 팔괘정이다.

    임이정에서 바라 본 팔괘정. 오른쪽 위 하얀 전망탑 아래 보이는 것이 팔괘정이다.

  • 황산 남쪽 산마루에 자리잡은 임이정. 임이정 주변은 숲이 무성해 팔괘정에서 조망하기 어렵다.

    황산 남쪽 산마루에 자리잡은 임이정. 임이정 주변은 숲이 무성해 팔괘정에서 조망하기 어렵다.

  • 주소충남 논산시 강경읍 금백로 20-8

이용안내

  • 임이정과 팔괘정은 시간을 특정 짓고 유적지 출입을 제한하지 않는다. 가급적이면 낮 시간으로 답사계획을 세우되 해질 무렵 답사도 권장할만하다. 두 정자 모두 일몰감상을 하기에 좋은 장소이기 때문. 임이정 아래 차량 서너 대를 댈 수 있는 주차장이 휴식공간과 함께 마련되어 있다. 입장료나 주차비 무료(문의전화 746-5411~5)

찾아가는길

네비게이션 이용 명칭 검색

  • 죽림서원(명칭검색 시 죽림서원을 검색하는 게 좋다. 목적지 중심에 위치하기 때문, 임이정이나 팔괘정 입력도 가능), 충남 논산시 강경읍 금백로 20-8

자가용 이용

  • 천안․논산고속도로 연무IC 통과 후 우회전 68번국도를 이용하여 연무IC 기준 3.61km 전방 산양삼거리까지 이동 후 이곳에서 좌회전, 1.15km 전방 강경중삼거리에서 5시 방향 길로 진입 곧이어 나타나는 황산로타리에서 황산대고 방면으로 방향을 잡은 후 황산대교 직전에서 우회전하여 200m 가량 이동하면 길 우측에 죽림서원이 보인다. 대형안내판을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지나는 차량이 많으니 비상깜빡이를 켜고 서행하면서 주차장 진입준비를 하도록 할 것.

먹을거리

궁중 보리밥․아구찜

‘자연을 머금은 좋은 먹거리’라는 말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식당을 운영하는 이집은 깔끔한 보리밥 정식이 정갈하고 맛스러워 다시 찾게 된다. 이 집에서 보리밥정식을 시키면 우선 호박죽과 함께 부침개가 나온다. 나물을 다지고 장을 끓이는 사이, 보리밥 정식이 준비되는 동안 시장기를 달래라는 주방장의 배려다. 고추장종지를 얹은 사라에 정성들여 얹은 다섯 뭉치의 나물은 고사리, 시래기, 호박볶음, 콩나물, 배추나물. 거기에 검은깨, 들깨를 얹어 맛을 한 가지씩 더해 음식의 풍미를 높힌다. 눈여겨 볼 것은 상에 같이 오르는 참기름이다. 주인네가 직접 운영한다는 방앗간에서 참기름을 공수하기 때문에 100% 믿을 수 있는 국산 참기름으로 맛이 매우 고소하다(보리밥정식 1인분 6,000원, 주먹밥 1인분 3,000원, 문의 및 예약: 041-745-4749, 018-730-4947).

  • 궁중보리밥의 보리밥정식

    궁중보리밥의 보리밥정식

  • 푹 삶은 찰진 보리밥에 나물을 고루 넣고 그냥 비벼도 좋다. 순이 살아있는 생야채를 얹어 된장찌개로 한숨 죽여 비벼먹는 보리밥 맛도, 생야채와 나물 등을 함께 넣고 비벼도, 맛있는 한끼 식사를 즐기기에 충분하다.

    푹 삶은 찰진 보리밥에 나물을 고루 넣고 그냥 비벼도 좋다. 순이 살아있는 생야채를 얹어 된장찌개로 한숨 죽여 비벼먹는 보리밥 맛도, 생야채와 나물 등을 함께 넣고 비벼도, 맛있는 한끼 식사를 즐기기에 충분하다.

  • 고소한 참기름 치고 비벼먹는 보리밥에 주먹밥 1인분 추가해도 좋다. 생야채와 나물을 다져 뭉친 주먹밥은 아삭하게 씹히는 상큼함과 고소한 맛이 일품으로 남으면 포장을 해서 여행 중 간식거리로 먹어도 좋다.

    고소한 참기름 치고 비벼먹는 보리밥에 주먹밥 1인분 추가해도 좋다. 생야채와 나물을 다져 뭉친 주먹밥은 아삭하게 씹히는 상큼함과 고소한 맛이 일품으로 남으면 포장을 해서 여행 중 간식거리로 먹어도 좋다.

작가가 본 5월여행

성현의 반열까지 오른 스승과 제자

정암 조광조의 덕치, 퇴계이황의 도학, 율곡이이의 학문, 사계 김장생의 예학, 우암송시열의 의리 등 ‘조선조 오현(五賢)’으로 추앙받아 온 인물 중 김장생과 송시열은 사제지간이다. 송시열의 스승 김장생은 우암 송시열을 비롯하여 동춘당 송준길, 초려 이유태, 탄옹 권시 등 이름을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기라성 같은 인물들을 배출한 유학자이며 송시열은 조선왕조 실록에 3000번 이상이나 그의 이름이 오를 정도로 당대에 학문적 정치적 자취를 남긴 거인이다.

1630년(인조 8년) 송시열이 김장생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연마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맺어진 김장생과 송시열의 사제지간의 인연은 김장생의 아들까지 이어진다. 김장생이 죽자 송시열은 그의 아들 신독제 김집(愼獨齊 金集)에게 다시 학문을 연마하여 학문을 이룬 것. 이후 그는 생원시 합격을 시작으로 많은 학문적 정치적 업적을 남겼으며 사후(死後) 스승 김장생과 같이 우리나라 성현의 반열에 올라 전국의 많은 서원이 모시고 배향하고 있다.

  • 김장생과 송시열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죽림서원. 홍살문 위로 설핏 보이는 기와집이 임이정이다.

    김장생과 송시열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죽림서원. 홍살문 위로 설핏 보이는 기와집이 임이정이다.

  • 죽림서원의 제향공간. 전학후묘식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왼쪽 하얀 전망탑 아래 팔괘정이 보인다.

    죽림서원의 제향공간. 전학후묘식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왼쪽 하얀 전망탑 아래 팔괘정이 보인다.

선조의 풍류와 멋이 녹아든 임이정과 팔괘정

우리 선조들은 집을 지을 때 풍수지리에 입각해 집을 짓기도 하였지만, 주변풍광 또한 빼놓지 않고 살피며 집을 지었다. 특히 정자와 누각은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트인 곳에 지어놓고 자연을 감상하고 풍류를 즐기던 선조들의 멋이 깃든 건축물이다. 평소 자연을 감상하며 학문을 나누는 공간이기도 하면서 자연을 즐기며 정신수양을 하기도 하는 공간으로 멋을 아는 선조들에 의해 애용되어져 왔다.

죽어서 나란히 조선조 오현에 들어간 스승 김장생과 송시열이 남긴 임이정과 팔괘정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걸터앉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쪽마루가 있는 두 정자 모두 금강이 서해바다를 향해 도도히 흘러가는 풍경을 정자 안으로 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정자를 보면서 책 읽는 선비의 모습이 절로 그려지는 것은 자연을 벗 삼으며 학문연마와 정신수양 하기를 즐기는 우리선조들의 멋이 배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 팔괘정 앞마당에서 바라본 금강줄기. 금강하구 둑이 건설되기 전 까지는 뱃길이 살아있던 곳이다.

    팔괘정 앞마당에서 바라본 금강줄기. 금강하구 둑이 건설되기 전 까지는 뱃길이 살아있던 곳이다.

  • 팔괘정 뒤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 정자 옆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와 정자, 그리고 그 언저리 풍경이 조화를 이루어 한폭의 그림 같다.

    팔괘정 뒤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 정자 옆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와 정자, 그리고 그 언저리 풍경이 조화를 이루어 한폭의 그림 같다.

  • 임이정 풍경. 임이정 앞은 임이정기가 실린 탑비가 보호각 안에 세워져 있다.

    임이정 풍경. 임이정 앞은 임이정기가 실린 탑비가 보호각 안에 세워져 있다.

  • 임이정에서 바라다본 금강풍경은 팔괘정처럼 호방하지 않지만 아기자기한 멋이 있다.

    임이정에서 바라다본 금강풍경은 팔괘정처럼 호방하지 않지만 아기자기한 멋이 있다.

  • 팔괘정의 쪽마루.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걸터앉고 싶다.

    팔괘정의 쪽마루.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걸터앉고 싶다.

  • 임이정의 쪽마루와 창호. 앞면 두칸에 2분합 들어열개창을 두었다. 주변풍광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한 조상의 멋과 지혜가 엿보인다. 오른쪽 한 칸에도 2분합 창을 두었다.

    임이정의 쪽마루와 창호. 앞면 두칸에 2분합 들어열개창을 두었다. 주변풍광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한 조상의 멋과 지혜가 엿보인다. 오른쪽 한 칸에도 2분합 창을 두었다.

사제지간의 정이 깃든 임이정과 팔괘정

스승 김장생이 1626년(인조 4)에 지은 임이정은 제자 송시열이 지은 팔괘정과 초창연대를 같이한다. 스승이 정자를 짓자 존경하는 스승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학문을 연마하고픈 제자의 마음으로 팔괘정을 지은 것. 후학들에게 강학하던 공간으로 오늘에 전하고 있는 임이정과 팔괘정은 150M의 공간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어 정자에 서서 어느 한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제지간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임이정은 시경(詩經)의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못에 임하는 것 같이하며, 엷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이하라.”는 구절에서 연유하고 있다고 한다. 팔괘정은 송시열이 이율곡을 추모하며 당대의 학자와 제자들에게 강학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 임이정과 팔괘정은 죽림서원을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이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가운데 서원의 제향공간 위가 임이정이 있는 자리. 숲이 우거져 보이지 않는다.

    임이정과 팔괘정은 죽림서원을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이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가운데 서원의 제향공간 위가 임이정이 있는 자리. 숲이 우거져 보이지 않는다.

  • 임이정에서는 팔괘정을 쉽게 바라다볼 수 있다.

    임이정에서는 팔괘정을 쉽게 바라다볼 수 있다.

  • 임이정 전경

    임이정 전경

임리정(臨履亭) 문화재정보

종목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7호

답사문의처

논산시 문화관광과 041-746-5403

문화재설명

조선 인조 4년(1626) 사계 김장생(1548∼1631)이 지은 정자로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원래의 이름은 황산정이었으나 “깊은 못가에 서 있는 것과 같이, 얇은 얼음장을 밟는 것과 같이, 자기의 처신과 행동에 항상 신중을 기하라”라는 『시경』의 구절을 따서 임리정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앞면 3칸의 기둥 사이를 같은 간격으로 나누어 왼쪽 2칸은 마루를 깔아 대청으로 하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을 두었다. 뒤쪽으로는 사랑방을 2개 꾸며 사람들을 맞이할 수 있게 하였다. 임리정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정자 양식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이 정자는 조선(朝鮮) 인조(仁祖) 4년(1626) 유학자(儒學者)이며 예학(禮學)의 태두(泰斗)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1548∼1631) 선생이 건립한 강학(講學) 장소다. 임리정이란 사서삼경(四書三經)의 하나인 시경(詩經)의 "여림심연(如臨深淵) 여리박빙(如履薄氷)"의 구절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깊은 못가에 서 있는 것과 같이 또한 얇은 얼음장을 밟는 것과 같이 항상 자기의 처신과 행동에 신중을 기하라는 뜻이다. 원명은 황산정(黃山亭)이었다고 전하며 조선(朝鮮) 중기(中期)의 대표적인 정우(亭宇) 양식(樣式)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이다(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www.cha.go.kr).

  • 팔괘정 전경

    팔괘정 전경

팔괘정(八掛亭) 문화재정보

종목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76호

답사문의처

논산시 문화관광과 041-746-5403

문화재설명

팔괘정은 조선 인조 4년(1626)에 우암 송시열이 지었다고 전하는 정자로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추모하며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기르던 곳이다. 금강변에 남향으로 세워졌으며,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다. 왼쪽으로 2칸은 넓은 대청마루로 하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꾸몄다. 지붕은 화려한 팔작지붕으로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이다. 건물 안에는 시를 쓴 현판이 걸려있고, 건물 뒤의 바위에 송시열이 새긴 글자가 있다(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www.cha.go.kr).

우) 32987 충청남도 논산시 시민로210번길 9 (내동) TEL.041-746-5114(민원콜센터 ☎14-2217, 무료) FAX. 041-746-5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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