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논산여행
소설가 박범신의 문학적 고향강경을 가다
열댓 살 나 어린 소년이 강가 우거진 갈대숲에서 책을 읽는다.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학교 아닌 갈대숲에서 까먹으며 강을 오가는 배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물새소리와 갈대의 울음을 벗하여 책을 읽는다. 가끔, 등굣길을 접어두고 갈대숲으로 향하는 소년에게는 그곳에서 책 읽는 시간이 마냥 좋고 행복하기만 했다. 소년은 성장하여 스물일곱 나이가 되는 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소설가 박범신(1946~)의 이야기다.
논산시 연무읍에서 태어나 1961년부터 강경읍에서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박범신은 강경에서 교사생활을 하며 지낸다. 그러던 중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하게 된다. 이후 박범신은‘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 문학상,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로 김동리문학상, ‘더러운 책상’으로 만해문학상, ‘나마스데’로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우리나라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 잡는다.
'읍내 떡빙이‘, ’시진읍‘, ’더러운책상‘, ’들길 1, 2’, ‘논산댁’ 등 강경읍 일대를 소설의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은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박범신의 작가적 삶에 있어 강경은 떼어놓을 수 없는 그의 문학적 고향이라는 것을. 소설 ‘은교’발표 이후 서울생활을 접고 고향 논산으로 내려와 집필을 시작한 지 2년여, 소설 ‘소금’을 발표했다. 그가 고향 논산에서 쓴 최초의 소설이자 작가로 데뷔한지 만 40년이 되는 해에 펴낸 40번째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 역시 강경을 주무대로 하고 있다.
한때 10만여 명의 상인들이 몰려들었던 강경은 상인과 자본이 넘쳐나는 물류와 경제의 거점으로, 당대 한국 서·남부권 경제와 서·남해권 수산물 유통의 중심지였다. 번성했던 때 시간이 멈춰버린 듯, 지금은 옛 영화를 간직한 역사의 뒤안길만 간직하고 있을 뿐인 강경이이다. 박범신의 ‘소금’을 읽고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강경의 거리를 걷다보면 소설 속 인물들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설레임에 젖어들지 않을 수 없다.
황산나루 언저리 돌산 전경. 정상에 등대모양 전망대가 우뚝 서 있다. 이 전망대에 오르면 금강과 강경일대가 조망된다. 산 아래 광장에 박범신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경. 조선시대 2대 포구이자 조선말 평양장, 대구장과 더불어 강경장을 열어 우리나라 3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던 대도시 강경의 자취가 곳곳에 오롯이 남아있다.
옥녀봉 전경. 박범신 작가의 소설 소금에 나오는 소금집이 이곳에 있다.
소설의 주인공 선명우와 가족이 사는 집의 배경이 된 옥녀봉 북동쪽 정상부에 터를 닦아 집을 앉힌 소금집. 논산 성동면의 광활한 들과 그 들을 적시고 흐르는 금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 2대포구로 명성자자 했던 강경포구. 강경하면 서해에서 포구로, 포구에서 서해로 각종물자를 실어 나르는 배들로 왁자한 큰 포구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강경포구의 그 큰 뱃길을 가로질러 부여의 임천과 서천의 한산으로 길을 잇던 나루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황산나루’가 그것. 나루 언저리 황산과 황산포가 있었기 때문에 나루의 이름이 유래되는 황산나루는 부여와 서천사람들이 조선의 3대 시장인 강경을 오가는 중요한 수상교통로였다.
황산나루는 ‘소금’의 주인공 선명우가 소년기 때 서천을 가기 위해 부여 세도의 나루를 오갔던 나루다. 황산나루로 돌아오는 길, 세도에서 그는 운명처럼 첫사랑 소녀를 만난다. 소금의 무대가 되고 있는 황산나루는 1988년 황산대교가 준공되면서 터만 남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황산나루의 태생부터 성쇠까지 묵묵히 지켜봐온 돌산이 자락을 내린 곳 자그마한 공원에 문학비가 서있다. ‘박범신 문학비’가 그것. 광장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문학비는 비의상단부가 비뚤어져 있다. 그의 작가적 성향을 비를 세우면서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박범신 작가가 중학교 때 이사와 문단에 등단할 때 까지 살던 집 인근에 세워진 기념비. 초기엔 현실비판적 단편소설들과 아울러 감성적 문제, 역동적 서사가 잘 어우러진 여러 장편소설로 독자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고, 이후 뛰어난 작품들을 잇따라 발표했다.
논산이 낳은 소설가 박범신이 문학도로서의 꿈을 키운 곳이자 문단에 등단하기까지 실제 살았던 집은 가운데 빨간 기와집이다.
박범신 문학비가 있는 곳은 돌산전망대와 강경젓갈전시관이 마주보고 있는 자리에 위치한다.
박범신 문학비. 박범신 작가는 ‘현역정신을 버리지 않는 영원한 청년작가’를 지향하며 인간내면을 탐구하는우리나라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 잡았다.
박범신 문학비 근경
문학비가 있는 곳에서 계단을 오르면 돌산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황산대교 원경. 강경시장의 명성에 걸맞게 나루 또한 금강 제일의 규모를 자랑했던 황산나루는 1988년 황산대교가 준공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황산나루 언저리 돌산은 등대모양의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 올라서면 소년기 박범신의 문학적 모태가 됐던 갈대밭과 함께 소금의 핵심무대가 되고 있는 옥녀봉까지 한눈에 조망된다. 돌산전망대에서 옥녀봉까지 강경포구의 둑길은 선명우의 막내딸 지우와 화자가 걸었던 길이다. 한때 강경포구를 주름잡았던 어선들이 줄지어 서있는 낭만어린 둑길을 걷다보면 포구의 옛 모습이 그려진다.
뱃길을 이용하여 서해 요지의 포구와 포구를 잇고 청주, 보은, 공주, 금산, 전주, 익산 등지의 충청·호남지방의 육로를 통해 물자를 유통할 수 있는 지리적 요충에 강경포구가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육지의 공산품과 곡물은 뱃길을 이용하여 서해로, 서해의 수산물은 육로를 이용하여 각지로 유통할 수 있었다.
돌산전망대에서 바라본 강경포구 전경.
강경포구 둑길로 올라서면 강 건너 부여의 세도가 보인다. 선명우가 논산으로 유학 와서 여름방학 때 가족들이 있는 서천을 갔다가 다시 논산으로 돌아가는 150리의 여정 끝에 세도의 강나루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그곳을 지나던 세희에 의해 생명을 건진 선명우.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세희의 지극한 간호 끝에 일어났지만, 그날 할머니는 죽고 함께 장례를 치르며 세희와의 인연은 시작된다.
강경포구 둑길의 운치있는 풍경. 폐선을 둑길에 전시하여 나그네에게 옛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황산나루 언저리 돌산전망대에서 옥녀봉까지. 지우와 화자가 걸었던 길이다.
둑길의 끝은 옥녀봉으로 이어진다.
소금’의 주인공 선명우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초상이다. 가족의 이야기를 갈등에서 화해로 귀결 짓는 게 아니라, 가족을 버리고 끝내 가출하고야 마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의미하는 것은 가정이, 사회가, 거대한 자본과 소비문명이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따듯한 가장으로서의 아버지가 아닌, 이기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서 아버지를 만들고 있지 않는가? 하는 물음이다.
소금의 핵심무대가 되는 옥녀봉 정상은 소설 속의 주인공 신명우의 새로운 가족이 날씨 좋은 날 나들이를 나왔던 곳이다. 이곳에 오르면 300년 수령의 나이 많은 나무에 기대어 설 수 있다. 도도히 흐르는 금강이 강경포구를 적시고, 서해로 흘러가는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발길을 머물게 한다.
가족을 떠나 오랜 방황 끝에 정착해서 살았던 소금집이 옥녀봉 정상부 북동쪽에 터를 잡고 있다. 가족을 위해 염부로 살다 비통하게 죽은 아버지의 소금밭이 있는 서천을 오가며 소금장사를 하는 신명우는 소금집의 소금창고에서 주말이면 술판을 벌였다. 스스로 가수가 되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불렀다. 술과 안주를 팔아 생기는 돈은 부수입, 술판의 목적이 아니었다.
소금집 마당에 서면 논산천과 강경천이 합류하여 금강의 흐름을 더욱 도도히 하는 풍광이 눈에 들어오고 금강과 논산천이 젓줄이 되는 성동면의 드넓은 벌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금집은 선명우와 새로운 가족들의 보금자리일 뿐만 아니라 그가 이사 오기 전 그의 첫사랑 세희누나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집이다.
강경포구 둑길의 끝에서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가면 강경천과 논산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이른다.
논산천과 강경천의 합수점 너머로 계룡산이 조망된다.
합수점에서 바라본 옥녀봉.
논산천과 강경천이 만나 금강으로 흘러드는 지점부터 금강은 더욱 도도히 흘러 서해에 이른다.
옥녀봉을 오르는 길목의 해조문 전망대. 강경포구의 밀물과 썰물의 발생 원인과 시각 높이를 기록한 조석표가 새겨져있는 해조문의 전망이 좋다.
해조문 전망대에 서면 논산천과 강경천이 합류하여 금강으로 흘러드는 광경이 한눈에 조망된다.
옥녀봉 정상부의 느티나무 두 그루는 수령 300년을 훌쩍 넘긴 고목이다.
옥녀봉에서 바라본 강경시가지. 시가지 너머 왼쪽으로 보이는 먼 산이 대둔산이다.
옥녀봉정상의 고목이 있는 풍경. 금강이 옥녀봉에 이르러 휘어 도는 풍경이 한눈에 잡힌다.
소금집에서 바라본 논산 성동면 일대의 광활한 들판. 들판을 적시고 있는 논산천과 논산천과 합류하는 강경천이 한눈에 조망된다.
소금집 전경. 집 언저리에 텃밭이 마련되어있다.
선명우 생명의 은인, 부여의 세도에 살던 세희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강경의 염천리에서 젓갈장사를 하는 친척집에 의탁된다. 그곳에서 선명우는 남매의 정을 느끼며 세희를 다시 만나게 된다. 고등학생 세희와 중학생 선명우, 둘 사이 사랑이 싹틀 무렵 선명우는 대전으로 유학가고 후에 서울에서 세희와 재회를 하게 된다. 둘 사이 사랑은 확인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고, 선명우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으나 세희를 잊지 못했다.
세희는 선명우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간직한 채 그를 기다리며 홀로 살아가다 소금집에서 생을 마감한다. 둘 사이의 운명이 엇갈리지 않았으면 선명우에게 가해졌던 자본의 폭력은 없었을 것이라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세희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염천리는 선명우의 첫사랑이 싹트는 무대다.
옥녀봉에서 바라본 강경읍 중앙로 일대. 골목마다 젓갈상회가 거리를 이루고 있다.
소급집을 뒤로하고 북옥리 고샅길로 접어들면 담벼락의 벽화를 마주하게 된다.
벽화마다 어릴적 추억이 묻어난다.
벽화가 있는 풍경.
젓갈이 담긴 독을 싣고 가는 풍속도가 정겹다. 강경이 포구로서의 제 기능을 하고 파시가 섰을 때도 젓갈은 빼놓을 수 없는 강경의 물산이었다.
강경 중앙리 가는 길에서 만난 근대건축물. 낡고 오래된 이 건물은 강경 옛 도시의 모습을 떠올리는데 부족함이 없다.
강경의 옛 도심 중앙리의 어느 한 거리. 시간이 멈춰버린 듯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거리의 길모퉁이 상가는 박범신 작가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포목점이다.
지금에 강경은 젓갈거리로 가득하다. 젓갈은 강경에 대표적 물산이다.
대흥천변 염천리는 선명우와 세희가 사랑을 싹틔운 마을이다. 강경에서 유통되는 물산 중 소금도 빠지지 않는다. 염천리는 소금을 취급하는 수십의 객주가 있던 마을로 마을이름에서 당시의 풍경이 짐작된다.
젓갈상회가 거리를 이루고 있는 염천리 풍경. 이곳의 젓갈상회들은 젓갈이 가장 좋은 조건에서 숙성이 되도록 하는 저온저장고를 집집마다 가지고 있다. 젓갈저장고에서 종종 놀던 선명우와 세희는 어느 날 우연히 하룻밤 저장고에 갇히게 된다. 추위를 이기려 밤을 새우던 둘은 저장고에서 풋사랑을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