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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백장군 유적 전승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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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시는 길

소개

성충(成忠), 흥수(興首)와 더불어 백제의 3충신으로 꼽히는 백제 말기의 명장 계백 장군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계백 장군은 의자왕 20년(660)에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과 백강으로 진격해오자, 5천여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에서 신라 김유신의 5만 대군에 맞서 싸웠다. 전장에 나가기 전에는 가족들이 적의 노비가 되는 부끄러움을 면하기 위해 스스로 부인과 자식을 죽이고 떠났다고 한다. 죽음을 각오한 결사대의 용맹스러운 활약으로 4번의 싸움에서 이겼으나, 수적인 열세로 말미암아 마침내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이곳을 계백 장군의 무덤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옛 문헌에서 계백의 목이 잘렸다고 전하는 ‘수락산’과 계백의 시신을 급히 거두어 가매장했다는 ‘가장곡’이 바로 이곳이라는 점과 계백 장군의 위패를 모신 충곡서원이 바로 뒷편에 있다는 점이다. 또한 무덤지역의 동남쪽이 백제와 신라의 마지막 격전지였던 황산벌이라는 점도 있다. 원래 무덤 일원은 돌덧널(석곽)이 노출된 채 방치되어 있었는데, 1970년대 후반에 보수공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백제 말기의 명장 계백장군(階伯將軍)의 유허지(遺墟地)로 전해지는 곳이다. 계백(?∼660)장군은 성충(成忠), 흥수(興首)와 더불어 백제 3충신(三忠臣)으로 꼽힌다. 의자왕(義慈王) 20년(660년) 나당 연합군(羅唐 聯合軍)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과 백강으로 진격해오자 장군은 5천여명의 결사대(決死隊)를 이끌고 황산(黃山)벌에서 김유신 장군의 5만대군과 싸웠다. 죽음을 각오한 결사대의 용맹스러운 활약으로 4번의 싸움에서 이겼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마침내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전쟁이 끝안후 신라 김유신 장군은 계백장군의 시체를 찾도록 하였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는 그 부근의 백제민들이 몰래 시신을 걷어들여 급히 묘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찾지 못하였다가 1966년 찾게 되었지만 발견 당시에는 봉분이 반이상이 붕괴되어 내광이 노출되었으며 광벽까지 일부 파손된 채 방치되어 있던 것을 부적면민(夫赤面民)들에 의해 계백장군묘을 복묘(復墓), 지석을 안치한 후 내광회벽을 완봉한 후 봉분둘레 47.6m, 직경 15.15m, 봉분높이 6.5m로 복묘하였고 1976년 5월 19일 성분(成墳)하였다. 현재는 논산인들의 숙원사업인 계백장군 묘역에 대한 성역화(聖域)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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