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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論山市)의 건치연혁(建置沿革革)

조회수2729
  • 부서명 : 논산시
  • 2018.03.28

논산시는 백제시대에는 황등야산군(黃等也山郡)과 덕근군(德近郡)의 2개군에 속하였다가 신라시대에 이르러서는 황산(黃山), 니산(尼山), 덕은(德殷), 석산(石山)의 4군으로 개칭하였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황산(黃山)을 연산(連山)으로 덕은(德殷)을 덕은(德恩)으로, 석산(石山)을 석성(石城)으로 개칭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덕은군(德恩郡)은 시진현(市津縣)을 합하여 세종(世宗)때 은진현(恩津縣)으로 고치고 니산현(尼山縣)은 영조(英祖)때 니성현(尼城縣), 정조(正祖)때 노성현(魯城縣)으로 개칭하였으며, 1912년 4현(縣)을 4군(郡)으로 변경하여 연산군, 은진군, 노성군, 석성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은진군과 연산군의 전부와 노성군의 소사면(素砂面)을 제한 전부와 석성군의 원북면(院北面)의 악산(岳山), 장상(壯上), 양상(陽上), 갈산(葛山), 음상(陰上), 도리(島里), 하동(下東), 하서(下西), 중리(中里), 소죽(小竹)의 10개리와 병촌면(甁村面)의 상리(上里), 불암(佛岩), 개척(盖尺), 원궁(元宮), 중리(中里), 송촌(松村)의 6개리와 우곤면(牛昆面)의 서당리(書堂里), 상리(上里), 월외(月外), 포전(浦田)의 4개리와 정지면(定止面)의 하리(下里), 중리(中里), 화정리(花亭里), 야동(冶洞)의 일부와 삼산면(三山面)의 하리(下里), 장리(長里), 오산(五山)의 일부와 공주군(公州郡) 익구곡면(益口谷面)의 월오리(月午里), 명동(明洞), 하성(下城), 양화동(陽化洞) 일부, 가척리(加尺里)의 5개리와 곡화천면(曲火川面)의 용연동(龍淵洞) 일부, 봉익(鳳翼), 하반룡(下盤龍), 효죽(孝竹)의 4개리와 진두면(辰頭面)의 공평동(公坪洞) 일부와 진잠군(鎭岑郡) 하남면(下南面)의 조동(鳥洞), 우명리(牛鳴里)의 2개리와 서면(西面) 월저리 일부, 전라북도 여산군(廬山郡) 피제면(皮提面)의 신리(新里), 사천(沙川), 방축(防築)의 3개리와 북삼면(北三面)의 교항(橋項), 포변(逋邊), 반리(般里)의 3개리와 북일면(北一面)의 신흥리(新興里)와 합선면(合先面)의 죽평리(竹坪里)와 고산군(高山郡) 운북면(雲北面)의 하고(下高), 상고(上高), 도상(道上), 도하(道下), 상리(上里), 중리(中里), 신교(新郊), 백촌(栢村), 계동(桂洞), 무수(無愁), 구만리(九萬里)를 병합하여 논산(論山)의 산(山) 이름을 따서 논산군(論山郡)이라 하고 상월(上月), 노성(魯城), 광석(光石), 성동(城東), 연산(連山), 부적(夫赤), 양촌(陽村), 두마(豆磨), 벌곡(伐谷), 가야곡(可也谷), 구자곡(九子谷), 대조곡(大鳥谷 : 1915년에 恩津으로 개칭), 채운(彩雲), 강경(江景), 논산(論山)의 15개면을 관할하였다.

논산을 놀뫼라고도 하는데 이는 삼국사기지리지(三國史記 地理志)에 보면, ‘黃山郡 本百濟 黃等也山郡 景德王 改名 令連山’이라 기록되어 있어 누를황(黃)과 니을연(連)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수 있다. 니을연(連)은 사람들이 줄을지어 섰을 때 ‘늘어섰다’고 한다.
또 ‘늘다’(增大), 늘이다(엿가래)등의 기본형인 ‘늘다’가 이미 백제시대에 사용되어 왔다. 그래서 ‘늘다’는 누를황(黃)과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였던 것이다. 그래서 산이 늘어선 까닭으로 황산(黃山)이라 하였는데 그 뜻은 ‘느러뫼’이며 후대에 와서 연산(連山)으로 고쳐진 것이다. 따라서 백제어(百濟語)에 ‘누르(黃色)’와 ‘느러(連)’의 두 단어가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놀뫼’는 ‘느러뫼’(連山)가 변하여 불리어진 지명이다.


1931년4월1일 읍면제 시행에 따라 강경면은 체운면의 산양리(山陽里)와 제내리(堤內里), 채산리(彩山里)를 편입하여 강경읍(江景邑)으로 승격 1읍 14면이 되었고, 1938년10월10일 논산면은 성동면의 화정리(花亭里)와 은진면의 등리(登里)를 편입하는 동시에 관촉리(灌燭里)를 은진면에 넘기고 논산읍으로 승격 2읍 13면이 되었다.
또한 1963면1월1일 법령제 1177호에 의거 구자곡면(九子谷面)을 폐지하고, 야촌(野村), 왕암(旺岩), 삼전(蔘田)의 3개리는 가야곡면에 편입시키고, 시묘리(侍墓里)는 은진면에 편입시켰으며,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황화면(皇華面)의 전부와 구자곡면의 마산(馬山), 죽평(竹坪), 금곡(金谷), 동산(東山), 죽본(竹本), 소룡(巢龍), 양지리(陽地里)를 병합하여 연무읍으로 승격 3읍 12면이 되었다.


서기 1973년7월1일 대통령령 제 6542호(73.3.12공포)로 가야곡면 석서리를 양촌면으로 편입하였고, 서기 1983년2월15일 제 11027호(83.1.10공포)로 가야곡면 중산리와 양촌리 일부를 양촌면에 편입하고, 양촌면 신양리를 연산면에 편입하였으며, 은진면 토양리 일부를 연무읍에 편입하게 되었고, 서기 1987년1월1일 대통령령 제 12007호(86.12.23공포)로 은진면 내동리, 강산리, 관촉리를 논산시로 편입하고, 서기 1989년1월1일 법률 제 4049호(88.12.31공포)로 대덕군 진잠면 남선리를 두마면에 편입시켰으며 서기 1990년2월19일 충청남도 조례 제2029호로 두마면에 계룡출장소를 설치하였다.

논산시의 면적은 553.73㎢로 충청남도 전면적의 6.6%를 점하고 있으며 동서 길이가 약 32㎞, 남북길이가 약 30㎞대체로 원형을 이루고 있다. 논산시는 3읍 11면으로 법정리 184리, 행정리 450리에 2,152반으로 편성되어 있고, 1,003개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어있다. 인구는 43,587세대에 남자 76,553명, 여자 76,815명으로 총 153,368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현재 : 계룡출장소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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